‘장삿속’ 퐁피두 ‘맞장구’ 부산시
입력 : 2024.09.04 20:41 수정 : 2024.09.04. 20:45 홍경한 미술평론가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 구입 예산은 형편없다.
해마다 들쑥날쑥하지만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립현대미술관조차 50억원 안팎이다.
지자체 산하 공립미술관들은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다.
많아야 10억원대이고 수억원에 불과한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예산으론 어지간한 작품 한 점도 사기 어렵다.
2022년 기준 작품 구입비로 5억원이 편성된 부산시립미술관이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32억원에 팔린 김환기 작품 ‘05-Ⅳ-71#200 우주’를 소장하려면 무려 26년치 예산을 모아야 한다. 글로벌 미술관을 표방하지만 1만점이 조금 넘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90%가 국내 작품인 것도 ‘궁핍’과 무관하지 않다.
기증 문화가 뒤처진 한국에선 소장품 구입 예산 대부분을 정부와 지자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원은 매우 박하다. 소장품의 문화적·역사적 가치에 대한 인식 빈약이 원인이지만, 지방정부는 곧잘 재정 부족을 내세운다. 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산광역시 씀씀이를 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이미 부산시립미술관과 부산현대미술관이 있는데도 프랑스의 국립근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을 유치하겠다며 막대한 공적자금을 쏟아부으려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부산시는 ‘세계적 미술관 부산유치 기대효과 및 활성화 전략 토론회’를 열고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운영 방향과 사업비 등을 공개했다.
자료에 의하면 건립을 위한 총사업비는 1000억원이 넘는다. 연간 운영비는 125억원 정도로 추정했다.
수백억원의 부지매입비와 매년 퐁피두센터에 지급해야 할 브랜드사용료 수십억원 등은 제외한 금액이다.
반면 연간 총수입은 입장료와 임대 운영비를 합쳐 약 50억원으로 추산했다. 운영비와의 차액이 약 75억원이다.
2030년 무렵 개관부터 적자인 구조다.
이처럼 커다란 결손액이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분관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세계적인 미술관 유치가 곧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도약하는 것이라는 부산시의 착각에 있다.
퐁피두센터는 이미 사우디, 스페인, 벨기에, 중국 등 세계 곳곳에 분관이 있다.
한국만 해도 한화그룹이 내년 서울에 분관을 개관, 4년 동안 운영하게 된다.
한화가 재계약할 경우 퐁피두센터 분관이 두 개나 존재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가 된다.
중복 논란이 나오는 배경이다.
프랑스 퐁피두센터는 2025년부터 전면 보수공사에 들어간다.
잇따른 해외 분관 설립도 경영 악화와 수천억원의 보수공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 사람은 다 안다.
부산시가 바라는 지역 미술계와의 상생이나 문화 교류 플랫폼 역할과는 사실상 거리가 있다.
결국 ‘외화벌이’를 통해 자신들의 경영위기를 타개하겠다는 퐁피두센터 속셈에 부산이 맞장구치는 모양새다.
퐁피두센터를 유치하는 대신 1000억원이 넘는 건립비와 운영비를 부산시립미술관과 부산현대미술관에 지원하면 소장품 수준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그 돈이면 손가락 수보다 적은 전시기획 인력의 증원도 용이해지고, 부족한 시설을 보강하거나 전시의 질도 높일 수 있다. 세계 주요 비엔날레로 도약 중인 부산비엔날레나 부산 지역 작가들에게 투자할 경우 부산의 문화예술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제대로 된 행정 철학을 갖고 있는 지자체라면 장삿속 뻔한 외국 프랜차이즈 미술관 유치보다는 자신이 가진 것을 발전시켜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만든다.
정준모 미술평론가의 말처럼 돈으로 명성을 사기에 앞서 “그들이 미술관을 움직이는 시스템”에 관심을 둔다.
부산시가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다.
20240827 경향신문 ‘예술과 오늘’
‘한국의 나오시마’가 나오려면
홍경한 미술평론가
둘레 16㎞에 불과한 일본 세토(瀨戶) 내해의 작은 섬 ‘나오시마’(直島)는 1990년까지만 해도 폐기물로 뒤덮인 쓰레기 섬이었다. 구리제련소가 배출하는 아황산가스를 피해 주민들조차 떠나가던 황무지였다. 그런 그곳에 1987년부터 ‘예술’이라는 옷을 입혔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세계 최초의 지하미술관인 지추(地中)미술관을 비롯해 독특하고도 자연친화적인 미술관을 섬 곳곳에 세웠고 클로드 모네, 이우환, 쿠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 카렐 아펠, 데이비드 호크니와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앉혔다. 모두 장소 특정적인 건축물과 미술이었다.
이후 나오시마는 전 세계에서 매해 수십만명이 방문하는 ‘예술의 성지’가 됐다. 빈집을 개조해 마을과 주민의 역사가 작품의 일부이도록 하고, 다양한 기획전과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통한 지속 가능의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시키자 200명에 불과했던 인구는 현재 약 40배 가까이 불어났다. 나오시마를 거느린 가가와현의 경제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세도우치 트리엔날레(3년마다 개최되는 국제예술제)가 처음 열린 2010년부터 2022년까지의 경제효과만도 매회 1000억원 이상에 달했다.
오늘의 나오시마를 일군 주역은 정부나 지자체가 아니라 문화예술의 힘을 믿는 기업과 주민이다. 일본의 출판·교육 기업 ‘베네세 홀딩스’(Benesse Holdings)의 후쿠다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郞) 회장의 ‘공익적 자본주의’라는 경영이념과, 상생을 전제로 한 주민들과 예술가들의 협치가 지금의 나오시마를 만들었다. 특히 소이치로 회장은 죽어가는 땅에 헛돈을 쓴다는 주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30여년에 걸쳐 섬을 구입하고 수천억원을 나오시마에 투입하며 공공의 이익증진을 위해 헌신했다. 주민들은 삶의 터전이 곧 예술이 되도록 하면서 지역의 미래를 견인했다. 이들이 없었다면 작금의 나오시마 역시 없었을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며 나오시마의 성공 사례는 세계에 알려졌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도시재생을 말할 때마다 단골처럼 소환된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의한 공동체 붕괴 현실에 처한 지자체들에 나오시마 개발 사례는 흥미로운 모델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자지단체장들과 의회의원들이 나오시마를 찾는다.
하지만 성과는 불분명하다. 재생과 혁신을 외치며 숱하게 드나들지만 결국은 이렇다 할 결실 없이 혈세만 축낸다. 당연하다.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자체장은 임기가 정해져 있기에 나오시마처럼 수십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어렵다. 실무를 담당할 공무원들도 1~2년 내 부서를 옮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전임 지자체장의 과업을 뒤집고 폐기시키는 일이 빈번하다. 이는 지속 가능한 정책이 이뤄질 수 없는 결정적 요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나오시마’를 꿈꾼다. 물론 대개는 불가능하다. 한국의 지자체들이 나오시마 사례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장기적 종합계획을 세우고 그 플랜에 따라 인내와 뚝심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조립하듯 완성해나가는 철저함과 섬세함이다. 프로젝트 전체를 관통하는 분명한 주제의식과 함께 전문가와 재정을 담당하는 행정의 명확한 역할 분담, 예술이라는 특별한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오시마의 기적’은 민간 주도의 길고 긴 투자와 인내의 산물이지 정치적 성과에 급급한 이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단기적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